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추진 반기는 보험업계

서류 처리비용 감소·진료 빅데이터 취득 기대
의료계 반발, “심평원에 보험사까지…상전이 둘 생기는 것”

사진=연합뉴스

[세계비즈=안재성 기자]국회가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보험업계는 내심 반기는 모습이다.

 

보험금 청구 증가는 우려되지만 그보다 서류 처리비용 감소폭이 더 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한 진료 빅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소비자가 요양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 서류를 보험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보험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해당 서류 전송 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 근거도 담겼는데, 대신 서류 전송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또 의료계의 우려를 배려해 심평원이 해당 정보를 다른 목적에 사용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았다.

 

같은 당의 전재수 의원과 야당인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등도 비슷한 개정안을 내놓아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정치권 관계자는 “소비자들을 위한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반대할 까닭이 없다”며 “정기 국회 회기 내 통과 가능성이 꽤 높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는 소비자들에게 꽤 큰 혜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수는 약 3400만명에 달한다. 전 국민의 70% 가량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까지 불린다.

 

그러나 그간 실손보험금을 받으려면 복잡한 서류 증빙이 필요하다보니 소비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청구가 간소화되면 몇 만원의 실손보험금도 부담 없이 청구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편익이 대폭 증대될 전망이다.

 

보험사 입장에서 볼 때 연간 8000만건에 이르는 실손보험금 청구 건을 일일이 서류로 받아 수기로 입력해야 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가입자 수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서류 처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며 “실손보험금을 전산으로 청구받는 건 디지털화 트렌드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진료 빅데이터 획득도 보험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 보험업계 관계자는 “병원으로부터 직접 전산화된 진료 정보를 받게 되면, 막대한 빅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쌓을 수 있다”며 “이는 향후 신규 보험상품 개발이나 기존 상품의 요율 조정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양한 병원에서 취득한 진료 빅데이터는 보험금 지급 거부의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의 경우 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이다. 빅데이터를 손에 쥔 보험사가 이를 근거삼아 똑같은 종류의 진료임에도 더 비싼 값을 매긴 병원에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심평원으로 진료 정보가 흘러가는 부분은 고용진 의원의 개정안에서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더 큰 문제는 보험사”라면서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가 거듭되면 결국 병원이 보험사 입맛에 맞춰 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며 “심평원에 이어 보험사까지, 상전을 둘 모시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3일 공식 성명을 통해 법안 통과 시 강경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2020년 국정감사 이슈분석’에서 “전산화되지 않은 실손의료보험은 소비자뿐 아니라 병원과 보험사 모두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명시하는 등 국회의 의지가 전례 없이 강한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공공의대 논란’과 달리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는 소비자들에게 명백히 이익인 제도라 의료계에게 반대의 명분이 약하다”며 “결국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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